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족 보
이 글은 그동안 울릉도·독도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안동의
한국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는 순천장씨(順天張氏) 학서주손가(鶴棲冑孫家)
기탁 문헌들 가운데서 1694년 울릉도 수토를 하였던 장한상(張漢相) 관련 자
료를 소개하면서, 필자가 기왕의 연구 1에서 잘못 추정하여 기술한 사항들
을 수정하고, 또 필자의 기왕의 연구를 축조(逐條) 논박한 유미림 박사의 비
판2에 대해 필자의 관견(管見)을 재정리하여 제시하는 것이다.
순천장씨 학서주손가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세거하고 있는 순천
장씨 남산문중 학서(鶴棲) 장규섭(張奎燮, 1863-1940)의 종손가를 말한다. 학서
주손가 소장 문헌은 고서류 108종 226책과 고문서류 221점으로, 전체가
2003년 후손 장건식씨에 의해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되었다. 3 학서
주손가 문헌에는 순천장씨 족보 및 선조들의 행적을 기록한 실기류(實記類)
의 문헌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. 특히 1900년에 편찬된 경자보(庚子譜),
1922년에 편찬된 임술보(壬戌譜), 1955년에 편찬된 을미보(乙未譜)가 모두 보
존되어 있다. 그리고 족보를 편찬할 때마다 동시에 가문의 문헌록도 편찬되
었다. 경자보를 편찬할 때 『충효문무록(忠孝文武錄)』이 편찬되었으며, 임술보
를 편찬할 때는 이름을 바꾸어 『승평문헌록(昇平文獻錄)』(초간본)이 편찬되었
고, 을미보를 편찬할 때도 『승평문헌록』(복간본)이 편찬되었다. 이와 같이 족
보와 문헌록이 동시에 주기적으로 편찬 간행되어 시계열적인 자료가 한 곳
에 보관되어 있고, 편찬을 주도 했던 학서 장규섭과 그의 손자 장세호(張世
鎬, 1903-1985)에 관한 자료가 온전히 남아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한층 높다
고 할 수 있다.
필자는 작년에 순천장씨 가문에서 족보를 편찬할 때 가문의 문헌록을 동
시에 편찬하였음을 보고하였다. 4 다만, 작년에는 『순천장씨족보』 정사보(丁
巳譜, 1977)와 『승평문헌록』 초간본 및 복간본만을 열람하였고, 이 세 가지
자료만을 근거로 추론하였기 때문에 보고 내용에 오류가 있게 되었다. 즉
경자보를 편찬할 때 『승평문헌록』 초간본이 나왔고, 임술보를 간행할 때 복
간본이 나온 것으로 추론한 것이다. 그런데 이번에 한국국학진흥원의 학서
주손가 자료를 통해 경자보(1900), 임술보(1922), 을미보(1955) 등을 열람할 수
있었다. 무엇보다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찾아낸 『충효문무록』을 통해 많은
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. 『충효문무록』은 경자보(1900)를 편찬할 때 함께
편찬된 첫 번째 문헌록이었고, 그에 따라 『승평문헌록』 초간본은 1922년
임술보 편찬시, 복간본은 1955년 을미보 편찬시 각각 편찬되었던 것을 확
인할 수 있었다.
『충효문무록』의 중요성은 첫 번째 간행된 문헌록이라는 점과 그 안에 편
목으로 실려 있는 「절도공양세실록(節度公兩世實錄)」 때문이다. 「절도공양세
실록」은 「절도공실록(節度公實錄)」과 「소절도공실록(少節度公實錄)」으로 편목이
나뉘어, 계속 간행된 『승평문헌록』에 실린다. 그런데 필자는 이번에 학서
주손가 문헌 속에서 『충효문무록』을 찾았으며, 또 단행본으로 엮어진 『절도
공양세실록(節度公兩世實錄)』도 함께 찾게 되었다. 『충효문무록』에 선별되어
편집된 「절도공양세실록」의 모본 『절도공양세실록』을 함께 발견한 셈이다.
그리고 이번에 발견한 『절도공양세실록』에도 「울릉도사적(蔚陵島事蹟)」이 실
려 있다. 다만, 아쉽게도 「울릉도사적」은 뒷부분 몇 장이 결락된 상태이다.
물론 『절도공양세실록』은 작년에 의성조문국박물관에 소장된 경덕사 기탁
문헌 가운데서 찾아내 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. 5 그러나 금번 학서주손가본
『절도공양세실록』의 발견은 경덕사본 『절도공양세실록』외에도 또 다른 필
사본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이 『충효문무록』 편찬에 활용되었을 가능성
이 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생각된다.
이처럼 순천장씨 가문의 족보가 편찬될 때마다 아울러 가문의 문헌록이
편찬되었는데, 우선 양자의 관계에 관한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선결
과제라고 생각된다.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 둘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고, 이
어서 금번 발견된 『충효문무록』과 『절도공양세실록』을 소개할 것이다. 그
리고 마지막으로 「울릉도사적」 및 『서계잡록』「울릉도」와 관련하여 필자가
기왕의 연구에서 주장한 몇 가지 논점에 대해 축조 비판한 유미림 박사의
반론에 대하여 필자의 천견(淺見)을 다시 한 번 제시하려고 한다.